지난 7월 나는 2년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. 사실 올해 초부터 이직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지만, 어쩌다 보니 급하게 결정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. 이전 회사를 나올 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꼭 이번 퇴사만큼은 잘하고 싶었다. 나를 지키고, 나의 마음을 지키고, 나의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.
퇴사를 잘하는 법, 사실 마음이 중요하지
내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건 이유가 명확했다. 사실 이직을 결심한 뒤의 회사 생활은 생각보다 힘든데 이미 마음이 조금 떠난 상태에서 이 팀에, 이 프로젝트에 애정을 쏟는게 힘들다는 거다. 심리적인 압박이 계속되다 보니 이전에는 잘 넘어갔던 일들도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.
돌이켜보면 그래도 난 이 시기를 비교적 잘 넘긴 것 같다. 물론 출근하기 싫다고 친구들에게 징징거리긴 했으나, 그때마다 내가 이 회사를 처음 선택했을 때를 떠올렸다. 내가 해보고 싶은 건 다 했나? 정말 여한이 없나? 그래도 마지막까지 해내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?
다행히 나의 구여운 코-워커들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어서 내부 회고 시스템을 점검하고, 팀원의 포트폴리오를 봐주고,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도서 출판 2건을 성사시키면서 제법 괜찮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. 나에게도, 회사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마무리였다.
든든한 동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💕
정말 소름이었던 건 암사자들이랑 이 이야기를 한참 한 다음날 어영부영 퇴사를 하는 게 결정돼버렸다는 것이다. 멘탈이 약간 흔들릴 뻔 했는데 든든한 동료들 덕분에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. 참고로, 암사자들은 빌라 선샤인이라는 여성 커뮤니티의 소셜 클럽으로 만난 사이인데 암(것도) 사(수도 없는) 자(들)의 모임이다.
암사자들과는 19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, 이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다. 그만큼 내게 큰 영향력을 끼쳤던 암사자들. 코로나 이후로 오프라인 모임을 하지 못하면서 거의 2년 가까이 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, 이렇게 분기별로라도 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. 너무 보고 싶다. 진짜- 사랑해,,,
퇴사 후에도 일상은 지속된다
퇴사가 결정되었다고 바로 흥청망청일 수는 없었다. 인수인계와 마지막 도서 마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. 하지만 그 외에도 내게는 HSK5급 시험이 있었지. 다행히 남은 연차를 써서 5급 벼락치기를 (나름) 성공적이게 해냈다. 아무런 고민 없이 오롯이 5급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. 결과는 둘째치고 진짜 열심히 했다. 2시간 자고 출근하고,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될 정도로.
나는 약 1년 정도를 자발적 수험생으로 살고 있는데, 이 시간이 내게 주는 단순한 이치가 있다. 단련은 시간의 힘이다. 한 순간의 폭발적인 힘이 아닌 지속하는 시간의 흐름이다. 단련의 한자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연장을 만들기 위해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리는 것을 나타낸다. 이 동작은 한번에 이뤄지지 않는다. 수차례 반복되는 담금질을 통해 비로소 단련은 완성된다. 공부와 운동은 단련의 힘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행위가 아닐까? (사실 운동은 모르겠다. 안 해서...)
힘들긴 힘들었지만 이 시간 덕분에 나는 퇴사 후에도 지속되는 일상을 잘 잡을 수 있었다.
이제는 익숙한 듯 낯선 부산
7월 22일 마지막 출근을 하고, 그다음 날 나는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. 코로나 이후로 처음 내려갔으니 거의 2~3년 만에 간 부산이다(버터랑 호떡이 키우면서 더 못 간 것도 있다). 20살이 지나 바로 일본으로 가서, 한국에 돌아 와선 또 1년도 되지 않아 서울로 오게 되었다. 뭐, 정확히 말하면 경기도인데 사실 내게는 별반 다르지 않다. 서울이나 경기도나...
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올라온지도 벌써 5년이 넘어, 횟수로는 6년 차다. 돌아보면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이곳에서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. 이번에 부산 가서 새삼 느꼈는데, 이젠 부산이 좀 낯설다. 20살 전에 살던 도시와 그 이후에 살던 도시는 완전히 다르구나.
5년 정도 더 살면 정말 여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?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고 두렵지만, 다행히 요즘은 불안보다 낙관이 더 가깝다. 이건 모두 나의 사랑스러운 동료들 덕분이다. 늘 감사한다.
퇴사 기념 수(상한) 녀(자들) 모임😎
사실 부산은 쌓아만 두고 있던 곗돈 털러 간 거다. 수상한 여자들이랑 곗돈으로 먹거리 조지고 왔다. 퇴사하자마자 가서 다행이다. 살짝 오려고 했던 싱숭생숭한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. 얘들이랑은 만나기 전에는 하고 싶은 말 잔뜩 쌓아서 만나는데 결국 만나면 추억 팔이나 하게 된다. 이번에는 중학교 졸업 앨범 투어 했네.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내일모레 서른이라니 아찔하다. 30대도 잘 부탁한다 얘들아.
아마도 방학, 7월
7월은 재택이 유독 많았고, 그 덕분에 재택 동지 동친들과 점심이나 이른 저녁을 함께했다. 점심 모임은 짧아서 아쉽긴 해도, 그만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. 햇감자와 복숭아, 다시마 쌈밥을 열심히 먹었다. 내가 계절을 잘 보내고 있는지는 밥상을 보면 알 수 있다. 지금 돌이켜봐도 참 잘 보냈다.